한국현대미술신문 박재남 기자 |
2026년 1월 16일부터 2월 5일까지 인천 연수구 새벽세시 갤러리에서 박동균, 배건, 이경화, 류수, 이한경 작가가 참여하는 『차가운 겨울, 오히려 따뜻함 展』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시간성 위에 ‘따뜻함’이라는 정서를 중첩시키며, 예술이 감각과 마음에 건네는 위로의 가능성을 조망한다.
차가운 겨울은 인간의 감각을 위축시키지만, 예술은 종종 그 반대 지점에서 감정의 온기를 불러낸다. 이번 전시는 색과 선, 빛과 밀도, 반복과 여백이라는 회화의 본질적 언어를 통해,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회복되는 감성의 온기를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서로 다른 작업 세계를 지닌 다섯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따뜻함’이라는 공통의 정서에 접근하며, 하나의 정서적 합주를 이룬다.
“시간을 축적한 네모의 조형, 삶의 기억을 쌓다”

박동균 작가는 수묵과 채색, 아크릴 물감을 활용해 ‘적(積)’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조형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배접된 한지 위에 스며드는 물성과 농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백 개의 네모 조각들은 픽셀처럼 최소 단위의 조형 요소이자, 작가가 살아온 시간의 편린을 상징한다.
각기 다른 크기와 높이의 판넬 위에 네모 조각들을 겹겹이 연결하는 작업은 반복되는 일상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기억의 중첩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흑과 백, 밝음과 어둠, 낮과 밤이라는 대비 구조는 동양적 음양 사상을 내포하며, 지나온 삶의 흔적과 정체성을 성찰하는 조형적 기록으로 확장된다.
“수평선, 감정과 자연이 만나는 위안의 경계”

이경화 작가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평선은 자연이 가진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위로의 언어다. 삶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 혹은 감정이 지나치게 고조될 때 수평선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균형을 회복시키는 ‘중용의 선’으로 기능한다.
작품 속 바다는 자개의 빛으로 변주되며, 관람자의 감정과 공명하는 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다양한 지역에서의 삶과 자연을 경험하며 얻은 감정을 화면에 녹여내며, 그림 앞에 선 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삶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건네고자 한다.
“단순함으로 응축한 본질의 미(美)”

배건 작가의 「비너스의 선(線), 그리고 만나다!」는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선과 면이라는 최소한의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화려한 상징과 서사를 배제한 채, 절제된 선의 리듬과 포근한 색면을 통해 비너스의 본질적 이미지를 호출한다.
이 작품은 ‘다 보여주지 않음’의 미학을 통해 관람자의 감정과 기억이 개입할 여지를 남긴다. 침묵에 가까운 조형 방식 속에서 비너스는 특정 형상이 아닌, 인간적인 온기와 사유의 대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빛과 대칭,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그리다”

류수 작가는 자연과 빛, 그리고 대칭 구조를 중심으로 생성과 소멸의 질서를 탐구한다. 숲과 물, 꽃과 낙엽 등 자연에서 추출한 이미지를 조화롭게 결합해 화면 위에 펼쳐내며, 이는 개인의 기억을 넘어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통해 축적된 빛에 대한 경험은 회화 작업으로 이어지며, 색과 형태의 반복, 대칭 구조를 통해 안정감과 숭고한 감동을 동시에 추구한다. 작가에게 회화는 내면의 세계를 시각화하는 여정이자, 삶과 존재를 성찰하는 기록이다.
“빛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감정의 여행”

이한경 작가의 「빛의 여행」은 아침 햇살과 자연의 순간에서 출발해, 빛이 만들어내는 관계성과 에너지를 시각화한 작업이다. 빛과 거미줄이라는 모티브는 일상의 감정과 존재의 긴장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겹쳐진 선과 색은 빛이 생성하는 연결과 흐름을 형상화하며, 작품은 현대인의 삶을 비추는 하나의 감각적 여정으로 기능한다. 이한경의 작업은 전시 전체에서 감성과 사유를 잇는 미학적 축을 형성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인간이 지닌 내적 열기와 감정의 지속성을 상기시킨다. 추상과 구상, 감각과 이성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지점에서, 이번 전시는 하나의 정서적 합주를 이룬다.
이 전시는 말한다. 따뜻함은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과 마음의 문제라고. 그리고 예술은 그 따뜻함을 가장 조용하면서도 깊이 있게 건네는 언어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